勞政 새판 짜자는 민주노총…정부·정치권에 "우리와 협상하라"
최저임금委 등 정부 위원회
민주노총 몫 확대 요구
정부 "양대 노총이 협의해 배분"
재계 "기업 현안에도 개입 늘 것"
민주노총은 지난 25일 자료를 내고 “제1 노총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”며 “촛불항쟁 이후 민주노총의 투쟁과 교섭이 신뢰감을 줬고, 언제나 노동자 곁에서 투쟁하는 민주노총을 선택한 결과”라고 자평했다.
그러면서 정부에 5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. 첫 번째로 “그동안 제2 노총이라는 이유로 각종 정부위원회 위원 배정이 상대적으로 적었다”며 “이번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즉시 재배정하라”고 요구했다. 구체적으로는 한국노총보다 한 명씩 적게 참여하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(한국노총 5명, 민주노총 4명)와 보건복지부 재정운영위원회(한국노총 3명, 민주노총 2명)를 적시했다.
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70여 개 정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. 공익위원(전문가)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·사·정이 3분의 1씩 참여하는데 지금까지는 한국노총이 노동계 몫의 과반을 차지했다. 민주노총 요구대로 재배분이 이뤄지려면 양 노총이 협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한국노총과의 노노 갈등이 예상된다. 양 노총 간 세 불리기 싸움은 더 격화할 전망이다.
민주노총은 노조 조직률(현 11.8%)을 30%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정부에 제도 개선과 행정 조치를 요구했다.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인 특수고용직과 배달대행 기사 등 플랫폼 노동 종사자의 노조 설립 허용 등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주문이다.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“문재인 정부가 친노동 정책을 표방하면서 법원까지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는 듯한 판단을 하고 있다”며 “‘타다 금지법’ 사태에서 보듯이 혁신성장은 더 멀어지지 않겠느냐”고 우려했다.
민주노총은 또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0.1%에 불과한 것과 관련, “중소 영세사업장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”고 했다. 이 밖에 삼성전자서비스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언급하며 관련 사안 연루자의 구속수사도 요구했다. 또 현재 학회 위탁 방식으로 진행하는 노조 조직현황 조사를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국책연구기관으로 이관하라고 주문했다.
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에 대해 공식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고심하는 분위기다. 자칫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사회적 대화 등 노정관계의 판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.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“조직률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등 민주노총의 요구사항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검토해볼 계획”이라며 “각종 위원회 참여 비율은 양 노총이 협의해 배분해온 것으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”고 말했다.
제2, 제3의 청구서 잇따를 듯
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에 선을 긋고 있지만 문제는 ‘1차 청구서’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.
민주노총의 요구는 주로 최저임금 인상,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, 사회안전망 확대, 국제노동기구(ILO) 핵심협약 비준 등 정책 관련 사안이지만 항상 패키지처럼 붙어다니는 요구사항이 따로 있다. 노사분규가 벌어지고 있는 개별 사업장에 관한 요구다. 지난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민주노총이 국회에 제시한 요구안을 보면 도로공사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외에 한국잡월드, 영남대의료원, 새마을금고노조 서인천분회 등 개별 사업장의 노사분쟁 해결 요구도 담고 있다. 표면적으로는 갈등 해소를 위한 중재와 지원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사업주나 기관장에게 압력을 행사해달라는 주문이다.
백승현 기자/최종석 전문위원 argos@hankyung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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